감정과 감성사이

  몇 해 전 녹음이 짙어가던 오월 어느 하루, 도로 옆 식당에 들렀을 때 고양이 녀석이 반가운 듯 아는체 해달라는 듯 ‘야옹 야옹~’거리며 슬금슬금 다가왔다. 자리 잡고 앉을 때까지 주위를 맴도는 게 신기해 관심을 보였더니 당당하게 내 옆자리로 자리를 잡는다. 한술 더 떠 만져도 경계하지 않고 오히려 무릎위로 올라서서 아주 오래전부터 안면을 튼 것 같이 자연스런 애교를 뿜으며 친근함을 표시했다.

 주인장 사연을 들으니 앞 도로에서 사고를 당한 길고양인데 그 때 어미까지 잃은 아픔이 많은 아이란다. 이 녀석 후유증으로 장애가 남아서 인지 걸음걸이가 조금 불편해 보일 뿐 붙임성과 넉살은 가히 초특급이란 생각이 들었다. 식사를 끝낼 때 까지 옆에 꼭 붙어있던 상황인지라 혹시 데려가도 되냐고 여쭸더니 흔쾌히 그리하란 답이 돌아왔다.

  그렇게 ‘미미’와의 만남이 시작됐다. ‘미미(微美)’는 작은 귀요미란 의미로 지어준 이름이다.

 고양이 털 알레르기가 있지만 그건 다음 문제였고, 그보단 이 녀석을 매몰차게 떼어 놓으면 뭔가 마음이 더 무거워 질 수 있다는 막연한 내 감정의 소용돌이가 멈춰지길 바라는 선택의 결과였다. 필요한 용품과 사료와 간식을 준비하고 공간을 마련하는 등 새 식구를 맞이하느라 부산을 떤 만큼 ‘미미’도 애교와 제자리돌기 장기로 보답해 주는 센스로 넘쳐났다. 하지만 알레르기 문제는 약으로 해결할 수 없는 근본적인 딜레마, 그렇게 4주간의 인연이 끝나고 입양을 결심했다. 하지만 그곳은 이미 터줏대감 역할을 하는 검은 반점 고양이, 짙은 갈색 길냥이들이 영역 다툼을 하는 전쟁터였다. 다행히 ‘미미’도 처음엔 낯설고 두려워했으나 어렵지 않게 적응해 나가는 듯 보였다. 마음이 놓이고 미안함도 조금 덜해질 무렵 번식기가 다가오자 ‘미미’를 동료로 받아들이고 친하게 살펴주던 그들의 평화협정이 깨지며 ‘미미’는 치열한 서열경쟁에서 밀려나 도망자, 패배자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다. 애교와 붙임성이 장기였던 ‘미미’가 공포와 두려움에 떠는 이상 증세를 보이더니 어느 순간 보이지 않았고 단풍이 들어 낙엽이 다 지고 월동준비 중에 뼈와 털로 발견돼 아카시아 나무아래에서 영원히 헤어졌다.

 한 해 한해 시간은 빛의 속도보다도 떠 빠르게 지나는 것 같다. 핸드폰 갤러리 폴더의 오래된 사진들을 정리하다보니 ‘미미’의 가방습격사건 때 앙증맞은 모습이 남아있었다. 삭제해 버리면 우연한 만남의 흔적들까지 사라져 버릴 것 같다는 생각에 ‘미미’를 그려보고 싶었다. 그렇게 시작된 고양이와 개, 새, 그림들이 한 마리 두 마리 늘어나 대 식구가 됐고 식구가 늘어갈 때 느끼는 기쁨도 쏠쏠했다.

 ‘미미’를 그리기 시작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내가 하는 작업들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내 자신을 위해서인가? 결과를 바라볼 그 누구를 위해서 인가? 공감과 이해 소통을 추구한다는 미명하에 나안에 스스로 갇히는 덫을 놓거나, 소우주에 매몰돼 버리는 우를 범하고 있는 건 아닌지… 원인과 결과라는 흐름 속에 나타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은 어떤 관계성과 의미를 가지는 것인가?

 내 스스로 지금까지 고민한 나아갈 방향의 답은 ‘점’(點)이다. 아무것도 없는 무(無)의 상태에서 시작하는 시점과 마무리의 종점, 모든 현상들을 내면의 눈을 통해 바라보는 관점, 화두인 점에 대한 탐구가 ‘미미’와의 우연한 만남에서 기인한 건 특별하고 이상하다 반문도 해보지만 아직까지는 더 확실한 답을 찾지 못했다. 물리적 인식체계인 두 눈의 밝지 못함보다는 아둔한 마음의 눈이 제대로 뜨이지 않아서 일 것이다.

 관점은 차이와 사이의 비교 대상과 공감각적 의미들을 내포하는 어렵지만 재미있는 요소인 것 같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객체들의 독립적 존재들만큼이나 다양할 수 있겠으나 모아지지 않으면 방향성과 진전을 위한 변화를 꾀하기 쉽지 않고, 강제로 모으거나 좁히고 획일적 오류와 횡포에 빠질 수 있음을 두려워하면서 지금의 작업을 지속한다면 언젠가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란 스스로 다독임과 믿음을 가져본다.

 우주에서 바라보면 먼지보다 작은 점에 불과한 생명의 점 지구를 채우고 지켜온 대지와 물, 숲과 바람, 아름다운 새, 꽃과 나비, 반려동물이라 칭하는 개와 고양이 등 모든 생명체들이 교감하며 오래도록 행복할 수 있기를…

 

오월의_어느 날